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 반짝임과 덧없음에 대하여
“내 인생에서 커다란 두 가지 즐거움이 있었다면 그건 나비 채집과 낚시였어. 다른 건 모두 시시했지.” - 헤르만 헤세 헤세가 그려낸 나비에 대한 관찰, 시, 이야기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만나다 헤르만 헤세만큼 나비와 직접적인 유대를 표현한 작가가 있을까? 나비는 짧은 삶과 아름다운 것의 덧없음, 단계적인 탈바꿈에 대한 상징으로 헤세의 소설과 시, 에세이, 그리고 제목만 보면 나비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데미안》과 같은 작품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는 이렇게 헤세가 나비에 대해 쓴 글 가운데 특별히 선별한 작품들만을 모아 그가 “오늘날의 그 어떤 컬러 인쇄판보다 수백 배는 더 아름답고 세밀”하다고 말한 나비 동판화와 함께 엮었다. 또한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를 번역한 박종대 전문 번역가가 헤세의 개성 있는 문체를 섬세하게 표현하고자 신경을 썼다. 책 말미에는 특유의 직관과 감수성으로 에세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임경선 작가의 〈헤세의 뮤즈 나비를 만나는 시간〉을 새로 추가해 헤세의 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만날 수 있게 했다. 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헤세의 자전적 이야기뿐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아름다운 나비 그림들과 함께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헤세의 자전적 체험이 담긴, 인생을 그린 동화 같은 이야기 “그 친구가 나와 다른 학우들에게 유명해진 것은 아주 곤혹스러운 방식으로 자신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학생들 사이에서 많은 뒷얘기를 낳은 한 사건 때문이었지.” 1952년 5월 31일의 한 편지에서 당시 여든 살이던 베네딕트 하르트만 신부는 자신보다 네 살 어린 헤르만 헤세에 대한 ‘나비 사건’의 기억을 적었다. 〈공작나비〉 이야기가 헤세의 자전적 실화라는 사실이 알려진 순간이었다. 〈공작나비〉는 나비를 무척 좋아하던 주인공이 이웃에 사는 모범생 친구의 공작나비를 자신도 모르게 훔치며 겪는 이야기다. 한번 망가진 것은 다시는 돌릴 수 없다는 주인공의 깨달음으로 끝나는 이 글은 유년 시절의 잘못에 대해 작가 헤세가 스스로에게 준 자기 징벌이기도 하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이 짜임새 있는 작품을 통해 헤세의 어린 시절과 나비를 통해 얻은 인생의 경험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곤충학자도 아니면서 여기 프레다에서 뭘 찾고 계신 건가요?” 단편 〈알프스 곰〉에서는 1,800미터 고지에 위치한 알프스 초원의 매력적인 풍경, 아름다운 숲들, 그리고 고산 지대의 장엄함이 여행객의 발길을 끌고도 남는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나비 수집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을 만난 헤세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헤세는 그들을 만난 사건으로 말미암아, 현실 인식 능력이 좁아질수록, 특별한 관심에 매몰될수록 더더욱 한 가지 목표만 맹목적으로 좇는 사람들을 직시하게 된다. 그리고 ‘공작나비’의 경험 이후 맹목적인 나비 수집에 차단막을 친 헤세는, ‘알프스 곰’을 쫓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비 수집에 더욱 확고한 자신만의 기준을 갖게 된다. “새까만 곱슬머리에다 슬픔을 품은 듯한 갈색 눈, 아름다운 검은 수염이 눈길을 끌었는데, 나중에 듣기로는 이름이 ‘빅터 휴즈’라고 했다. 나는 이 사내의 제물이 될 운명이었다.” 〈인도 나비들〉에서는 인도의 ‘캔디’라는 지역에 간 헤세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가 펼쳐진다. 헤세는 빅터 휴즈라는 나비 장사꾼을 만나게 되는데 나비를 팔기 위한 빅터 휴즈와 헤세 간의 집요한 심리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짓게 만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다.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나비, 그 반짝임과 덧없음에 대하여 “나는 나비를 비롯해 다른 덧없는 아름다운 것들과 항상 유대감을 느꼈다. 반면 지속적이고 고정된 관계, 이른바 확고한 구속은 나를 행복하게 한 적이 없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자식들도 차츰 나이가 들자 헤세의 나비 사랑도 마침내 이전의 국면을 끝내고, 그때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나비에 대한 관조적인 입장에 들어서게 된다. “마치 투탕카멘의 황금이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반짝거리고 구세주의 피가 지금도 흐르고 있듯”이라며 짧은 반짝임을 남기고 사라지는 나비를 투탕카멘에 비유한 〈마다가스카르에서 온 나비〉나, 〈신선나비〉에서 나비를 날려 보내는 태도는 나비의 매력이 젊을 때처럼 사냥과 수집의 즐거움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그는 더 이상 나비를 쫓지 않고, 나비 자체가 발산하는 생명의 표현들만을 즐긴다. 정확한 인지로 연상과 비유가 일깨워지고, 이 연상과 비유를 통해 부분 속에서 전체가, 모사 속에서 상징이 드러난다. 이제 헤세에게 나비의 비행은 “죽음에 대한 승리의 비유”가 된다. 그리고 나비의 외적인 아름다움에서 오는 매력은 덧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으로 깊어간다. 작가 임경선은 〈헤세의 뮤즈 나비를 만나는 시간〉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조차도 나는 개인적으로 오로지 ‘찰나’에 머문다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은 어쩌면 늘 그렇게 우리 곁을 덧없이 스쳐지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머물기보다는 이내 떠나버리기에, 우리는 도리어 더 매혹당하고 갈망하는 것일지도. 찰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헤세의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라고 말하며 헤세가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와 나비가 상징하는 아름다운 가치들의 일치성을 이야기한다. 이 외에 헤세는 〈나비〉, 〈어느 시집에 바치는 시〉, 〈와인 잔 속의 나비〉, 〈파랑나비〉, 〈삼월의 태양〉, 〈늦여름〉 등의 시에서 나비의 덧없는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헤세가 들려주는 나비 이야기》 의 편집에 관련하여 이 책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나비에 관해〉는 1936년에 출간된 아돌프 포르트만(Adolf Portmann)의 사진집 《나비의 아름다움》에 헤세가 추천사로 써준 글이다. 이어지는 산문들은 헤세의 삶에서 순차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에 맞춰 실었지만, 순서가 텍스트 생성 시기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반면 시는 시간순이 아닌 내용적 맥락에 따라 배치했다. 삽화는 일부러 손으로 채색한 옛 동판화를 사용했다. 동판화는 대부분 아우크스부르크 출신의 화가이자 섬유 무늬 디자이너인 야코프 휘프너(Jakob H?bner, 1761~1826)의 작품으로 1934년과 1936년에 인젤 출판사 시리즈 213권과 226권으로 출간된 《미니 나비도감》과 《미니 밤나방도감》에서 빌려왔다. 이 책의 말미에는 에세이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임경선 작가의 〈헤세의 뮤즈 나비를 만나는 시간〉을 실어 자유로움, 홀로 설 수 있는 용기, ‘찰나’의 가치 등을 나타내는 나비의 상징성과 헤세의 가치관을 보다 깊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하였다.